이완구 전 총리 별세 혈액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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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포스트 JP'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통한 이완구 전 총리가 별세했다고 합니다... 그 나이 향년 71세입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발인은 16일이며 장지는 고향인 충남 청양 비봉면 양사리 선영이라고 합니다.  이완구 전 총리의 사망 원인은 몇 년 전부터 앓고 있던 혈액암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이완구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원내 사령탑에 이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라는 국무총리에 오르며 승승장구, 충청권을 대표할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 이완구 전 총리의 생애와 사망 원인을 더욱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이완구 총리 혈액암?

이 전 총리는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증 진단을 받고 골수이식 후 건강을 회복했지만 최근 혈액암이 재발해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혈액암은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원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 해 보길 방사선, 농약, 약물이나 유전 그리고 바이러스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문제는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예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수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인 건 감검증, 몸의 이상반응을 인지하여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완구 총리의 정치생활

이완구는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에서 태어나 대전중학교와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재학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충남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공직의 길에 올랐습니다.


이완구는 이어 경찰로 옮겨 31세 나이로 최연소 경찰서장에 올라 고향인 홍성에 부임했습니다. 39세에는 최연소 경무관이 된 이완구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원회에서 파견 근무했고 1986~1989년도엔 약 3년간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로 근무한 적 있으며, 40대 초에 2급 공무원 상당인 치안감까지 올라 충북지방경찰청장, 충남지방경찰청장으로 지냈습니다.


1995년 신한국당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고향인 충남 청양·홍성군에서 당선됐습니다. 1998년 공동 여당이 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고 대변인을 맡았으며 2000년 재선에 성공해 원내총무(원내대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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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는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 입성을 노렸지만, 이완구는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완구는 이후 불출마를 선언하고 8개월간 치료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후 이완구는 병마를 극복하고 2013년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80%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하고, 이듬해인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하며 중앙 정치무대에 다시 한번 '이완구'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된 지 얼마 안 돼 터져 나온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되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검찰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완구 당시 총리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언과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결국 이 전 총리는 이에 서리와 임시직 총리를 제외하고 '최단 재임 총리'로 이름을 남기고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2017년 대법원에서 관련 의혹에 대해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아 재기를 노리는 듯했지만 2020년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이후 지병이었던 혈액암이 재발해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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